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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채무자라면 새 출발 가능하다
2012-08-31 14:10:00

건축자재 도매업을 하고 있는 박성실(가명)씨는 종종 외상거래에서 물품대금을 약속어음으로 받았다. 그러나 거래처 부도로 결국 빚만 지고 사업을 폐업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가정불화와 우울증으로 그의 아내는 스스로 생을 마쳤다. 채권자들의 독촉이 빗발치면서 박씨도 잘못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 어린 자녀들이 눈에 밟혀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때때로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기초생활수급비로 자녀를 부양하고 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여전히 그에게는 6000여만 원의 빚이 남아 있으며 자신의 소득이나 재산으로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안 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지급 불능 상태의 채무자가 늘면서 사회적으로 근로의욕 저하, 가정파탄, 범죄, 금융기관의 부실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또 과다한 채무와 사채업자의 극심한 채권 추심으로 채무자나 그 가족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채무자들의 신산한 삶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채무자의 경제적 파탄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박씨는 인정에 끌려 마지못해 연대보증인 란에 서명했을 것이며, 이렇게 시작된 빚은 카드 돌려막기와 고리 사채를 거쳐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부실한 신용조사와 과잉융자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문명국가는 지급불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채무자를 갱생시켜 사회에 복귀시키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의 파산법을 폐지하고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개인채무자에 관해서는 개인파산, 개인회생 그리고 일반회생절차를 두고 있다. 

개인회생절차는 담보채무 최대 10억 원, 무담보채무 최대 5억 원의 채무를 지급할 수 없거나 그러한 염려가 있는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가 생계비 이상의 최저 생계비 외의 소득이 있는 경우 최대 5년 동안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변제하게 한 뒤 면책시키는 제도이다. 일반회생절차는 채무 한도가 없는 점에서 개인회생절차와 차이가 있다. 개인파산절차는 지급불능인 채무자의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배당한 다음 채무자를 면책시키는 것으로, 회생절차마저 이용할 수 없는 채무자를 구제하는 제도다. 

채무자가 지급불능인 경우 이를 조기에 결정해 일부라도 변제받을 수 있다면 채권자에게도 바람직할 수 있다. 부실채권을 빨리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쩡한 채무자가 허위로 지급 불능임을 내세워 면책받는다면 채권자로서는 정당한 변제를 받을 수 없어 억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채권자가 금융기관이나 사채업자가 아닌 개인이라면 그 자신이 경제적 파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점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채무자의 파산이나 회생신청을 엄격히 막아야 하는 이유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달 1일부터 ‘새로운 개인파산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파산관재인을 선임하지 않고 판사가 직접 자격 없는 채무자를 걸러냈지만, 이 과정에서 업무 과중으로 절차가 많이 지연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원칙적으로 모든 파산사건에서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그로 하여금 채무자의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배당하는 청산절차를 진행하도록 하는 한편,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채권자에게 불리하게 처분하는 등 면책 불허가 사유가 있는지를 조사하게 했다. 다만 채무자는 파산관재인의 보수로 지급될 비용으로 최대 30만 원을 예납해야하는데(과거에는 파산관재인 보수로 150만 원 이상을 예납해야 했다), 이마저도 예납할 형편이 안 되는 채무자는 소명자료를 제출하면 종래와 같이 파산관재인 선임 없이 진행하게 된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파산선고는 접수 후 한 달 이내에, 면책은 그로부터 두 달 이내에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법원은 예상하고 있다.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박씨는 법원에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신청을 하는 경우 성실한 채무자라고 인정되는 한 청산 혹은 일부 또는 전액변제 후 면책을 받아 새로운 경제적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재산을 은닉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거나 절차에 불성실했다면 원칙적으로 구제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법원은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만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곽민섭 광주지방법원 파산46단독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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